관세·AI 격변에 흔들리는 독일 미텔슈탄트…한국 기업 인수 러시 가속

독일 제조업의 허리로 불리는 미텔슈탄트가 관세 전쟁과 인공지능 확산, 에너지 비용 급등이라는 삼중 압박 속에 급속히 흔들리고 있다. 장인정신과 틈새시장 1위 전략으로 세계 제조업의 모범으로 통했던 독일식 중소·중견 강소기업 모델이 구조적 한계에 직면하면서, 한국 기업들의 독일 제조업 인수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산업계에 따르면 국내 최대 공작기계 업체인 DN솔루션즈는 이달 말 독일 공작기계 업체 헬러 인수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헬러는 1894년 독일 뉘르팅겐에서 출발한 기업으로 자동차·항공우주·방산 등 초정밀 공정에 특화된 하이엔드 공작기계 강자로 꼽혀왔다. 4대에 걸친 가족 경영을 이어왔지만, 코로나19 이후 공급망 혼란과 독일 완성차 산업 부진이 겹치며 부채비율이 386%까지 치솟았고, 미국발 관세 전쟁 가능성까지 더해지자 대형 글로벌 메이커와의 결합을 선택했다.

삼성전자도 독일 제조업 인수에 적극 나섰다. 지난해 11월 유럽 최대 냉난방공조 기업 플랙트 그룹을 인수했고, 12월에는 자회사 하만을 통해 독일 자동차 부품사 ZF 프리드리히스하펜의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 사업 인수를 결정했다. 두산밥캣 역시 독일 소형 건설장비 업체 바커노이슨 인수를 검토하다 최종 철회했지만, 검토 대상에 올랐다는 사실 자체가 변화된 분위기를 보여준다. 이들 기업은 모두 업력 100년이 넘는 전통적 미텔슈탄트 출신이다.

독일 미텔슈탄트의 위기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독일연방통계청에 따르면 독일 내 기업 파산 건수는 2021년 1만3993건에서 2024년 2만1812건으로 3년 새 56% 증가했다. 독일 신용평가 기관 크레디트리폼은 지난해 파산 기업 수가 2만3900건에 달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이에 따라 독일 실업자 수는 294만8000명, 실업률은 6.3%로 2013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고령화에 따른 승계난과 탈원전 정책,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급등한 에너지 비용이 독일 제조업의 체력을 근본적으로 약화시켰다고 분석한다. 여기에 디지털 전환과 탈탄소 전환이 요구하는 투자 규모가 기존 미텔슈탄트의 내부 자본 역량을 넘어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독일 컨설팅 업체 호르바트 조사에 따르면 미텔슈탄트의 AI 투자 비중은 매출의 0.35%로, 전체 기업 평균의 70% 수준에 그쳤다.

미텔슈탄트 모델의 균열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시작됐다. 2015년 독일 공작기계 업체 DMG는 일본 모리세이키에 인수됐고, 이 합병으로 탄생한 DMG모리는 세계 1위 공작기계 기업으로 도약했다. 하지만 독일 제조업의 상징성은 크게 흔들렸다. 2016년에는 산업용 로봇 업체 쿠카가 중국 메이디 그룹에, 크라우스마파이가 중국화공그룹에 매각되며 기술 유출 논란이 불거졌다. 이후 오스람, 비스만 등 굵직한 제조 기업들이 잇따라 해외 자본에 넘어갔다.

이 같은 흐름은 독일 제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 독일 자동차 부품 업체들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최근 10년간 하락한 반면, 중국 기업들의 점유율은 두 배 이상 확대됐다. 한때 독일의 최대 수출 시장이던 중국은 이제 가장 강력한 경쟁 시장으로 변모했다.

최근에는 독일 자동화 설비 업체 만츠AG가 파산 후 테슬라에 인수되는 등, 매각 대상이 되는 미텔슈탄트의 범위도 확대되고 있다. 독일 현지에서는 중국 자본 유입에 대한 경계심이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기술 보호와 장기 경영을 중시하는 한국 기업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산업계에서는 이번 흐름이 위기이자 기회라는 시각이 공존한다. 독일 미텔슈탄트의 흔들림은 글로벌 제조업 지형 변화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한국 제조업이 정밀기계·자동화·AI 기반 공정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전략적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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