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대표하는 최고급 자동차 브랜드 ‘훙치(紅旗·홍기)’는 단순한 승용차가 아니다. 1958년 탄생한 이후 중국 지도부의 의전차이자 국가 권력과 산업 자립을 상징하는 자동차로 자리 잡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열병식과 해외 방문 등 주요 국가 행사에서 훙치 차량을 이용해 왔다.
훙치의 탄생 배경에는 신중국 건국 초기의 산업화 전략이 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 중국은 자동차를 자체 생산할 기술과 설비가 거의 없었다. 정부 기관과 지도부가 이용하는 승용차도 소련의 지스와 짐, 미국과 유럽에서 들여온 차량에 의존했다.
중국 정부는 자동차를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국가 공업 수준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봤다. 마오쩌둥은 1956년 “언젠가는 우리도 회의장에 우리가 만든 자동차를 타고 가고 싶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중국 지도자가 외국산 자동차에 의존하는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개발을 맡은 곳은 지린성 창춘에 세워진 국영기업 제일자동차제조창이었다. 현재 중국제일자동차그룹, 즉 FAW의 전신이다. 이 공장은 소련의 지원을 받아 1956년 ‘제팡’ 트럭 생산을 시작했으며, 이후 중국산 고급 승용차 개발에 들어갔다.
1958년 5월 중국 최초의 자체 개발 승용차로 평가받는 ‘둥펑 CA71’이 시제품 형태로 등장했다. 같은 해 8월에는 훙치 브랜드의 첫 고급 승용차 시제품이 완성됐다. ‘붉은 깃발’을 뜻하는 훙치라는 이름에는 중국공산당과 사회주의 국가의 정체성이 그대로 담겼다.
훙치의 초기 차량은 완전히 독자적인 기술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당시 중국 기술진은 크라이슬러 임페리얼을 비롯한 외국 고급차의 차체 구조와 엔진을 연구하고 분해하면서 개발 경험을 쌓았다. 외관에는 중국 전통 부채를 연상시키는 전면부와 궁등 형태의 후미등 등 중국적 디자인을 입혔다.
훙치의 대표적인 초기 모델은 1959년 생산된 CA72다. 중국 건국 10주년 행사에 맞춰 제작된 이 차는 대형 차체와 V8 엔진을 갖췄다. 1965년에는 3열 좌석을 갖춘 CA770 리무진이 등장했다. CA770은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덩샤오핑 등 중국 최고 지도자들이 이용하면서 중국 권력의 상징이 됐다.
훙치는 외국 정상의 중국 방문 때도 사용됐다. 차량을 자체 생산하고 외국 귀빈에게 제공하는 것은 중국이 더 이상 후진 공업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국가 홍보 수단이었다. 천안문 광장을 지나는 검은색 훙치 리무진은 중국의 열병식과 국빈 행사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훙치의 역사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수작업 중심의 낮은 생산성과 기술 부족, 막대한 제조 비용으로 1981년 생산이 중단됐다. 이후 아우디와 도요타 등 외국 업체 차량을 기반으로 한 모델에 훙치 상표를 붙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한동안 독자 기술보다 관용차 브랜드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훙치가 다시 국가 대표 고급차로 부상한 것은 2000년대 후반부터다. 중국 정부가 고위 공직자의 외국산 관용차 이용을 줄이고 자국 브랜드를 육성하면서 FAW는 독자적인 최고급 모델 개발에 나섰다. 그 결과 2013년 대형 리무진 훙치 L5가 공개됐다.
L5는 1950∼1960년대 훙치의 원형 헤드램프와 세로형 전면 장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길이 5.5m가 넘는 차체와 6.0ℓ급 V12 엔진을 적용한 모델이 알려지면서 ‘중국의 롤스로이스’로 불렸다. 높은 가격과 제한적인 판매 방식 때문에 실제 구매 자체가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기도 했다.
시진핑 주석은 훙치의 부활을 국가 산업정책과 연결했다. 2014년 상하이에서 열린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 정상회의 당시 훙치 L5가 정상 의전차로 투입됐다. 시 주석도 행사 과정에서 훙치를 이용했다. 이후 해외 순방과 국내 국가행사에서도 훙치 차량이 여러 차례 등장했다.
2019년 10월 중국 건국 70주년 열병식에서는 시 주석이 훙치의 국가 의전용 차량을 타고 인민해방군 부대를 사열했다. 당시 차량은 일반 판매용 L5와 외형이 비슷하지만 세부 구조가 다른 특별 의전 모델로 알려졌다. 흔히 ‘N501’이라는 개발명으로 불리지만 중국 당국과 제조사가 상세 제원이나 방호 성능을 공식적으로 공개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시 주석이 평상시에도 특정 훙치 모델을 전용차로 이용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중국 최고지도자의 차량 운용은 보안 사항이며 행사 성격과 방문 국가에 따라 다른 차량이 투입된다. 다만 열병식과 정상회의 등 공개된 국가 행사에서 훙치를 이용한 사실은 확인된다.
오늘날 훙치는 국가 지도자의 의전차에 머물지 않는다. FAW는 H5·H6·H9 등 세단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을 내놓고 일반 고급차 시장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전기차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 모델을 중심으로 해외 시장 진출도 추진하고 있다.
훙치의 부활에는 경제적 목적과 정치적 상징성이 함께 담겨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이 됐지만 오랫동안 고급차 부문에서는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등 외국 브랜드 의존도가 높았다. 훙치를 육성하는 것은 중국도 세계적 프리미엄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는 기술적 자신감을 보여주는 사업이다.
마오쩌둥 시대의 훙치가 외국산 승용차를 대신하기 위해 탄생했다면 시진핑 시대의 훙치는 중국 제조업의 위상과 국가 자부심을 드러내는 수단이다. 최고지도자가 훙치를 타는 장면 자체가 자국 기술과 브랜드를 선택한다는 정치적 메시지가 되는 이유다.
붉은 깃발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훙치는 60여 년 동안 중국 현대사의 굴곡을 함께했다. 외국차를 참고해 만든 초기 국산 리무진에서 국가주석의 열병식 차량, 일반 소비자를 겨냥한 고급 전기차 브랜드로 변신한 훙치의 역사는 중국 자동차 산업의 성장 과정과 맞닿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