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시대의 일본 엘리트 담론, 한국이 읽어야 할 경고음

일본 대표 종합 월간지 ‘중앙공론’ 2025년 12월호가 대학 문제를 넘어 글로벌 엘리트 네트워크 전반을 조망하는 특집을 내놓으며 일본 지식권 내부의 위기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이 잡지는 메이지 이래 관료·언론·학계·대기업 임원이 공유해 온 일본 주류 엘리트의 대표 담론장으로, 이번 호의 접근 방식은 대학을 단순 교육기관이 아닌 국가 전략의 핵심 인프라로 재규정하려는 의도가 뚜렷하다.

이번 12월호의 대제목은 ‘포퓰리즘 시대의 대학’이다. 부제로 ‘지식에 대한 불신과 대학의 사명’을 내걸고, 미국의 트럼프 정치, 유럽의 젠더 갈등, 중국 유학생과 AI 경쟁, 일본 신정권과 자민당, 지경학의 부상, 안보와 헌법 등 국제정세와 국내 현안을 한 묶음으로 배치했다. 지식·전문가·언론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시대에 대학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엘리트층이 스스로를 향해 던지는 질문이 담긴 구성이다.

특히 표지에 하버드 교문을 전면 배치하며, 미국 명문대조차 정치적 분열과 정체성 갈등의 한복판에 놓여 있다는 인식을 강조했다. 엘리트 네트워크가 더 이상 안정적인 지식 생산의 기반이 아니라, 포퓰리즘의 충격에 직접 노출된 취약한 구조라는 우려가 드러난 셈이다. 잡지가 미국·유럽·중국·일본을 다시 하나의 좌표축에서 읽어내려는 시도를 한 것은, 일본식 엘리트 담론이 내향성에서 벗어나 세계 권력 질서의 변화를 함께 고려하려는 감각이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장점도 있다. 포퓰리즘을 단순히 ‘감정적 대중’의 문제로 축소하지 않고, 전문가·대학·언론에 대한 신뢰 붕괴라는 구조적 조건과 연결하려는 시도다. 지식 인프라의 약화가 곧 국가 전략의 흔들림이라는 메시지가 분명하다.

그러나 한계 역시 뚜렷하다. 시선이 끝내 엘리트 내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지역·계층 격차, 도쿄 일극 집중, 청년층 불안과 비정규 노동 같은 구조적 문제에 대한 접근은 얕고, 해법으로 제시되는 방향도 “더 강한 대학, 더 강한 국가”라는 추상적 구호에 가깝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다수 시민의 삶을 어떻게 ‘지식’이 넓힐 것인지에 대한 설계는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한국이 이 호를 통해 읽어야 할 대목은 분명하다. 대학·싱크탱크·언론과 같은 지식 인프라가 흔들리면 안보·동맹·산업 전략 전체가 연쇄적으로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동시에 한국의 지식 생산 체계가 얼마나 투명한 데이터와 설득력 있는 언어로 시민과 소통하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특정 엘리트의 자기 정당화로 흐르지 않도록 감시하는 장치, 누구의 불안과 이해가 반복적으로 배제되고 있는지 점검하는 능력 역시 중요하다.

국제정세, 기술 경쟁, 안보, 대학의 역할을 하나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동시에 다루는 시각은 한국에도 필요한 관점이다. 일본 엘리트 담론의 변화는 한국에게도 “지식 패권 경쟁의 시대에 대학과 연구체계를 어떻게 재정렬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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