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이 수십 년간 내준 적 없던 상원 의석들이 하룻밤에 무너졌다.
3일(현지시간)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연방 상·하원을 동시에 탈환했다. 야당이 중간선거에서 양원을 한꺼번에 가져간 것은 2006년 이후 20년 만이다. 상원은 100석 가운데 민주당이 54석, 공화당이 44석을 확보한 것으로 4일 현재 집계됐다. 선거 전 의석은 공화당 53석, 민주당 45석이었다. 하원에서는 민주당이 435석 중 최소 250석을 가져간 것으로 주요 매체들이 추산했다. 알래스카와 미시시피 등 일부 지역은 개표가 끝나지 않아 민주당 의석이 더 늘 수 있다.
민주당이 공화당에서 빼앗아 온 상원 의석은 7곳이다. 캔자스, 아이오와, 텍사스, 오하이오, 메인,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캐롤라이나. 경합지로 분류되지도 않았던 곳들이 상당수 포함됐다.
가장 상징적인 곳은 캔자스였다. 민주당 애덤 해밀턴 후보가 공화당 현역 로저 마셜 상원의원을 꺾으면서, 1932년 이후 94년 만에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이 이 주를 대표하게 됐다. 텍사스에서는 정치 신예 제임스 탈라리코 후보가 켄 팩스턴 후보를 눌렀다. 텍사스가 민주당 상원의원을 배출한 것은 1988년 이후 38년 만이다. 메인에서는 트로이 잭슨 후보가 30년 가까이 의석을 지켜온 수전 콜린스 상원의원을 끌어내렸다. 메인의 민주당 상원의원은 1995년 이후 31년 만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도 넘어갔다. 민주당 애니 앤드루스 후보가 공화당 달린 그레이엄 후보를 꺾었다. 올해 별세한 린지 그레이엄 전 상원의원의 여동생이다. 오하이오에서는 2024년 낙선했던 셰로드 브라운 전 상원의원이 현역 존 휴스테드 의원을 꺾고 2년 만에 돌아왔고, 노스캐롤라이나에서는 로이 쿠퍼 후보가 마이클 왓틀리 후보를 이겼다.
하원에서도 선거구가 공화당에 유리하게 다시 그려졌던 지역이 줄줄이 뒤집혔다. 플로리다에서는 재획정된 선거구 가운데 최소 3곳이 민주당으로 넘어갔고, 아이오와는 4개 선거구 중 3곳에서 공화당이 패했다. 위스콘신에서도 공화당 의석 2곳이 민주당으로 바뀌었다.
이번 선거에서는 과거 미국 선거를 설명하던 ‘샤이 트럼프’ 가설이 힘을 쓰지 못했다. 선거 전 조사에서 민주당은 대부분 6~14%포인트 앞섰고, 실제 결과도 그 흐름과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출구조사에서는 여론조사가 민주당의 힘을 과소평가했다는 신호가 나왔다.
표가 움직인 이유로는 이란 전쟁과 물가가 꼽힌다. 전쟁 장기화로 유가가 오르고 관세 부과가 생활물가를 밀어 올리면서, 해외 분쟁에 개입하지 않고 물가를 잡겠다던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과 정면으로 어긋났다는 것이다. 제프리 엡스타인 문건 공개를 둘러싼 논란도 겹쳤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공화당의 이번 패배를 “현대사에서 대통령에 대한 가장 단호한 심판 중 하나”로 평가했다.
지지층 이탈도 뚜렷했다. 워싱턴포스트가 전한 시카고대 여론조사센터(NORC)의 예비 조사에 따르면 2024년 대선과 비교해 히스패닉과 가톨릭 신자, 30세 미만 유권자에서 민주당 쪽으로의 이동이 두 자릿수 포인트에 달했다. 2024년 트럼프 대통령을 12%포인트 넘게 지지했던 대졸 미만 유권자는 이번에 민주당 49%, 공화당 47%로 갈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 백악관에서 이란 전쟁이 선거 패배의 원인이라는 JD 밴스 부통령의 발언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대체로 맞다고 본다. 전쟁이 휘발윳값을 단기간 조금 끌어올렸다”고 답했다. 다만 “다시 해야 한다면 다시 해야 할 것”이라며 “이란이 핵무기를 갖도록 놔둘 수는 없다”고 전쟁 자체는 정당화했다. 전쟁을 주도한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의 교체는 검토하지 않는다고 했다.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는 선거 결과를 수용하고 민주당과 협력하겠다고 밝혔지만, 자신의 소셜미디어에는 “내가 투표용지에 있었다면 우리가 압승했을 것”이라고 적었다. 패배 책임과는 거리를 둔 셈이다. 뉴욕 증시는 트럼프 대통령이 결과를 받아들인 뒤 정치적 불확실성이 걷혔다는 평가 속에 4일 상승했다.
탄핵보다 조사권
민주당이 양원을 쥐면서 트럼프 행정부와 일가에 대한 의회 조사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소환장을 발부할 권한이 생기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미 하원에 헤그세스 장관 탄핵소추안을 발의해 놓은 상태다.
다만 대통령 탄핵은 산술적으로 어렵다. 하원에서 소추안이 통과돼도 상원에서 3분의 2인 67석의 찬성이 필요하다. 민주당이 미정 지역을 모두 가져가도 67석에는 크게 못 미쳐 공화당에서 11표 이상 이탈해야 한다. 민주당은 트럼프 1기 때 두 차례 탄핵을 시도했으나 모두 상원에서 막혔다. 당내에서 신중론이 나오는 이유다.
탄핵까지 가지 않아도 남은 2년의 국정 운영은 달라진다. 내년 1월 새 의회가 출범하면 하원의 입법 지원도, 상원의 예산안 처리도 민주당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거부권으로 맞설 수 있어 백악관과 의회의 충돌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
하원의장도 바뀐다. 마이크 존슨 의장의 임기가 끝나고, 민주당은 하킴 제프리스 원내대표를 추대할 가능성이 크다. 제프리스가 의장에 오르면 미국 역사상 첫 흑인 하원의장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