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취임 직후 1호 행정명령 비상경제점검 TF 회의를 주재한 가운데 국내 산업계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 산업 패권 경쟁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형 경제 안보 전략’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미국·중국·유럽연합(EU) 등 세계 주요국에서 발표된 산업 정책이 2580건에 달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이를 ‘산업 정책의 부활’이라고 정의하며, 정부 주도의 전략적 산업 육성이 다시금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은 현재 세계 양대 경제 강국인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이른바 ‘넛크래커’ 상황에 처해 있다. 제조업은 대기업의 투자 부진과 현금 유보 확대에 미국의 공급망 재편 압력까지 겹쳐 공동화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특히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와 자동차 산업은 미국의 보호주의적 정책과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이중 압박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권석준 성균관대 교수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실질적인 경쟁 상대는 정부가 막대한 지원을 하는 대만과 중국”이라며 “초격차 우위가 끝난 현재, 최소 한 세대 동안 지속될 생존 경쟁이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메모리 분야 외에 상대적으로 열세인 반도체 설계, 전기차, 자율주행 등에서 산업 생태계 구축이 필수적이라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위기 상황에서 신성장 산업과 기존 주력 제조업 간의 균형적 발전을 목표로 삼는 명확한 경제 안보 정책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AI·배터리·방위산업 등 미래 먹거리 분야에서 경쟁력을 높이고, 조선·철강·화학 등 기존 산업의 활력을 되살리는 큰 그림을 새 정부가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 교수는 “이전 정부는 민간 주도 성장이라는 원론적 개념에만 치중했고, 경제안보 관점에서의 전략적 공급망 관리와 산업 육성은 부족했다”며 “세계무역기구(WTO)도 경제 안보 목적의 보조금을 허용하는 만큼, 한국 실정에 맞춘 실용적이고 체계적인 경제안보 정책 수립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이런 정책 수립 시 정치적 입김이나 단기적 인기영합주의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경고한다. IMF 보고서 역시 “산업 정책은 선거철 등 정치적 동기에 휘둘릴 가능성이 높다”며 “경제적 필요성에 따라 객관적이고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남훈 산업연구원 원장은 “한국의 산업 정책은 단순히 중국과의 경쟁을 넘어 지속 가능한 성장동력을 발굴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고 새 분야 발굴에 대한 꾸준한 정책적 논의와 점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