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석유 파동은 미국 자동차 산업의 판도를 흔들었다. 고유가 시대에 연비가 소비자의 최우선 선택 기준으로 떠올랐고, 맞벌이 확대와 여성 운전자 증가로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가족의 안전과 생활 편의성을 갖춘 공간이 돼야 했다.
그러나 디트로이트의 빅3는 여전히 머슬카와 대형차 중심의 전략에 집착했다. 포디즘 생산 방식은 불황기에 대규모 재고를 양산했고, 이 재고는 할인 판매를 부르며 브랜드 가치를 스스로 깎아내렸다.
반면 일본 토요타는 린(lean) 생산, ‘저스트 인 타임(Just in Time)’ 방식으로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연비·품질·안전이라는 소비자 요구를 충족하면서도 비용을 최소화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고, 이는 미국 시장에서 절대적 우위를 만들었다.
노조 문제도 악재였다. 전후 황금기에는 성장 이익을 나누던 노사 관계가 1970년대 후반부터 균열을 보였다. 고용 보장을 앞세운 JOB BANK 합의, 자동화와 다기능화 반대는 기업의 경쟁력 회복을 가로막았다. 경영진의 전략 실패와 노조의 반발이 맞물리면서 디트로이트는 결국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
2008년 금융위기 때 GM과 크라이슬러는 파산 직전까지 몰렸고, 정부 구제금융과 오바마 행정부의 ‘오토 태스크 포스’ 개입으로 간신히 연명했다. 그 대가로 미국 자동차 노조(UAW)는 신규 채용자의 임금을 절반으로 낮추는 ‘투 티어 시스템(two-tier system)’을 수용해야 했다.
바로 이 시기에 현대차가 미국 남부 앨라배마·조지아 등 ‘라이트 투 워크(Right to Work)’ 주에 공장을 세우며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주 정부의 막대한 세제·현금 인센티브, 맞춤형 직업 훈련, 약한 노조 환경은 현대차가 빠르게 미국 생산 거점을 구축하는 발판이 됐다.
오늘날 한국 자동차 노조는 여전히 강경 노선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차·기아차는 이미 한국 생산 비중을 줄이고 해외 거점을 확대하는 중이다. 디트로이트가 걸었던 길을 한국도 그대로 밟을 가능성이 크다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미국 자동차 산업의 흥망은 한 시대의 산업·노동·정치 구조가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지금 그 그림자가 한국에 드리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