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방 이후 헌정 질서를 훼손한 인물 312명을 특정해 기록한 대형 연구 프로젝트가 공개됐다. 단순한 인물 비판을 넘어 국가 권력과 민주주의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 ‘역사의 공소장’ 성격이라는 평가다.
성공회대 석좌교수 한홍구는 11년에 걸쳐 집필한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 작업을 통해 “현실의 법정에서 처벌하지 못했더라도 역사적 책임은 반드시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작업은 해방 이후부터 1992년까지 헌법 질서를 파괴한 인물들을 대상으로 했다. 기준은 민간인 학살, 내란 및 헌정 파괴, 고문 및 간첩 조작, 부정선거, 언론 탄압 등 5가지다. 총 12권 가운데 1차로 4권이 출간되며, 권력 핵심부터 공개됐다.
특히 1권 ‘대통령 편’에는 이승만,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등 군사정권 시기 대통령 전원이 포함됐다. 헌법 수호를 선서한 최고 권력자들이 모두 반헌법행위자로 규정됐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법원과 검찰 등 사법 권력도 대상에 포함됐다. 전직 대법원장과 정치 판사, 검찰 수뇌부 등 권력기관 전반이 기록되면서 국가 폭력의 구조적 반복이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한 교수는 기존 과거사 정리가 피해자 중심에 머물렀던 점을 비판했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는 구조가 문제”라며 가해자를 실명으로 기록하는 것이 역사적 책임을 묻는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 작업에는 2014년 세월호 참사가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당시 참사를 계기로 민간인 학살 범주까지 포함되면서 연구 범위와 규모가 크게 확대됐다.
한 교수는 세월호 사건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연속성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국가의 무책임과 권력의 실패는 반복돼 왔으며, 그 속에서도 시민들의 책임과 희생이 사회를 지탱해 왔다는 시각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정부 지원 없이 시민 후원으로 진행됐다. 편찬위원회는 수사 기록, 판결문, 증언 등을 토대로 540여 차례 회의를 거쳐 최종 312명을 확정했다. 국가가 아닌 시민이 직접 역사 판단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했다.
한 교수는 이 작업의 목적을 처벌이 아닌 ‘정의와 치유’로 규정했다. 피해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가해자의 사과이며, 기록은 복수가 아니라 사회적 치유를 위한 과정이라는 입장이다.
그는 “가해자의 이름을 남기는 것은 기억의 형벌”이라며 “기록하지 않으면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