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패권, 석유에서 ‘컴퓨팅 파워’로 이동 중…한국 대응 시급

21세기 국제 정치·경제 패권의 중심축이 기존의 석유에서 ‘컴퓨팅 파워’(연산 능력)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재집권 이후 첫 공식 해외 순방지로 중동을 택한 것은 이를 명확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등 중동 주요국을 방문해 약 200조 원 규모의 비행기와 무기 거래를 성사시켰으나, 정작 가장 주목받은 계약은 AI 관련 딜이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사우디는 AI 데이터센터 건설 계약을 맺었다. 엔비디아는 최첨단 AI 칩을 UAE에 2030년까지 연간 50만 개씩, 총 200만 개 공급하기로 했다. 이는 현재 미국이 해외에 AI 데이터센터 설치와 AI 훈련을 엄격히 금지하는 상황에서 매우 이례적인 조치다. 사실상 미국 정부의 보호 아래 미국 영토 밖 최초의 대규모 AI 인프라가 중동에 구축되는 것이다.

이번 계약의 핵심은 사우디와 UAE가 중국의 기술과 장비를 사용하지 않기로 약속했다는 점이다. 중국은 그간 중동에 막대한 투자를 진행하며 특히 석유 결제를 위안화로 추진해 왔으나, 이번 AI 컴퓨팅 파워 계약에서 완전히 배제됐다. 전문가들은 이를 1974년 미국과 사우디 간 체결된 ‘페트로 달러 협정’과 같은 역사적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AI 컴퓨팅 파워는 이미 세계적 전략 자산이 됐다. 현재 전 세계 AI 분야 투자액의 40%가 미국과 중국의 100대 빅테크 기업에서 이뤄지고 있다. 전 세계에서 AI 데이터센터를 갖춘 나라는 32개국에 불과하며, 최신 AI GPU 확보도 미국과 중국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어렵다.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국가들은 낡은 AI 칩과 부족한 전력 인프라로 인해 고급 AI 연구는 물론, 기술 인재까지 해외로 빠져나가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한국 역시 미국의 AI 기술과 자본에 크게 의존하는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향후 격차가 더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소버린AI’ 정책이 ‘국산 대형언어모델(LLM)’ 개발에만 머물러선 안 되는 이유다. AI 컴퓨팅 파워 확보 여부가 앞으로 국가 주권과 직결되는 중대 현안으로 떠오른 만큼, 자체적인 데이터센터와 고성능 AI 인프라 구축 전략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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