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미국 정치권을 상대로 공격적인 로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로비 규모만 놓고 보면 이베이나 현대자동차보다 많다. 한국 정부의 규제가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이라는 논리를 미국 정치권에 각인시키기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
쿠팡은 법적으로 미국 기업이다. 쿠팡Inc라는 미국 법인이 한국 법인을 100% 소유하고 있으며, 주식 역시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있다. 이사회 구성원 중 한국인은 없고, 쿠팡의 미국 웹페이지에는 스스로를 ‘미국의 기술 기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2021년 3월 상장을 앞두고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이 뉴욕증권거래소 앞에 선 장면은 이런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쿠팡은 2024년 8월 미국 국무부와 공공외교 확대를 지원하는 협약도 체결했다. 이 협약에 따라 미국의 주요 공공외교 수단인 아메리칸 스페이스를 한국에 조성하는 데 협력하기로 했다. 쿠팡이 미국의 대외정책 기조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쿠팡은 미국 내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기업이다. 전자상거래 매출 규모가 비슷한 이베이는 미국 소비자 인지도가 높지만, 쿠팡은 그렇지 않다. 미국 웹페이지에서 홍보하는 로켓배송이나 스트리밍 서비스도 미국에서는 제공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미국 전자상거래 기업 순위에서도 쿠팡은 항상 제외된다. 미국 기업 상품을 한국이나 대만 소비자에게 유통하는 플랫폼 역할도 일부 하지만,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쿠팡이 미국 정치권을 상대로 적극적인 로비를 벌이는 이유는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로비는 자국 시장에서 규제와 지원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기업이 벌이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쿠팡은 예외다.
미국 로비 데이터를 분석하는 오픈시크릿에 따르면 쿠팡은 2021년부터 2025년 3분기까지 약 5년간 858만 달러를 로비 활동에 지출했다. 정치인 직접 후원까지 포함하면 1075만 달러에 달한다. 2024년 한 해에만 331만 달러를 집행해 로비 신고 대상 기업 9200여 곳 가운데 193번째로 많았다. 이는 같은 기간 이베이의 205만 달러, 전기차 보조금과 관세 이슈로 로비 수요가 컸던 현대자동차의 232만 달러를 웃도는 수준이다.
쿠팡은 2025년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준비 기금에도 100만 달러를 후원했고, 김범석 의장은 미국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공식 취임식에 참석했다.
쿠팡의 로비는 미국의 외교와 법 제도에 집중돼 있다. 워싱턴 DC 관계자들에 따르면 외교위원회와 사법위원회가 주요 로비 대상이다. 2021년 쿠팡에서 로비를 총괄했던 앨릭스 웡은 이후 트럼프 2기 행정부 국가안보 부보좌관으로 지명됐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의 전 비서실장, 미 의회 사법위원회 전문위원 등 전직 미국 정부 관료들도 쿠팡의 로비 업무를 담당해왔다. 로비 대상 기관 역시 상·하원 의회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국무부, 무역대표부, 상무부 등으로 폭넓다.
매출은 한국에서 발생하지만, 로비는 미국에서 이뤄진다는 점이 쿠팡의 특징이다. 지난해 미국 정치 전문 매체 보도에 따르면 쿠팡과 구글, 애플 등 미국 IT 기업들은 한국의 온라인 플랫폼법을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로 규정하며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왔다. 미국 무역대표부와 상무부 고위 인사들이 한미 관세 협상 과정에서 관련 기업 의견을 반영해 비공개로 법안 추진 중단을 요구했다는 전언도 나왔다.
쿠팡은 전 세계 플랫폼 규제에 반대하는 컴퓨터 및 통신 산업협회 회원사로 활동하며 한국의 온라인 플랫폼법 추진 중단을 강하게 주장해왔다. 매출 대부분을 한국에서 올리는 기업이 미국의 통상 압박 논리에 힘을 보탰다는 점에서 논란이 이어졌다.
쿠팡의 로비 보고서에는 “미국 기업이 해외시장에 진출하고 확장할 때 직면하는 문제점을 논의한다”는 문구가 반복된다. 한국과 대만 등에서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겪는 규제 문제를 미국 정부를 통해 풀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쿠팡이 인식하는 위험 요인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한 연례 보고서에서도 드러난다. 2024년 보고서는 한국의 온라인 플랫폼법 도입 가능성,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공정거래법, 노동조합 활동, 각종 소송과 형사처벌, 벌금 등을 주요 위험 요인으로 길게 설명했다. 정보 보안이나 국제 경제 변동보다 한국의 법과 제도 변화를 가장 큰 리스크로 본 것이다.
이 때문에 쿠팡이 미국 정부의 힘을 빌려 한국 정부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는 의혹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7월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가 이례적으로 한국의 온라인 플랫폼법 추진을 문제 삼아 공정거래위원회에 공식 항의 서한을 보낸 일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12월 미국 무역대표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 연례회의를 취소한 배경에 쿠팡이 있다는 해석도 제기됐다.
최근 한국 정부 관계자가 미국을 방문해 입장을 설명했지만, 미국 정치권 강경파는 동맹국이라 하더라도 미국 기업의 불공정 대우는 용인할 수 없다는 프레임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하원의원 일부는 공개적으로 한국 정부의 쿠팡 관련 정책을 문제 삼기도 했다.
쿠팡에게 한국 정부와 의회, 그리고 국내 여론은 리스크로 인식되고 있다. 매출은 한국에서 벌어들이면서도, 시선과 영향력 행사는 미국을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쿠팡의 행보는 한국 사회에 복합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