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올해 들어 대한민국과의 ‘한민족’ 개념 자체를 부정하는 이른바 ‘2개국가론’을 전격 제기했다. 이후 대내외 매체에서 관련 표현 삭제·변경, 상징물 파괴, 헌법 수정 등 일련의 조치를 잇달아 시행하며, 연일 말 폭탄과 전략 도발로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본 기사는 김정은 ‘2개국가론’의 등장 배경, 그동안의 징후, 그리고 향후 북한 체제와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을 살펴보자.
1. 신냉전 구도가 가져온 변화
① 하노이 노딜 이후 ‘새로운 길’
김정은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회담에서 아무런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뒤, 한 달간 칩거 끝에 ‘새로운 길’을 선언했다. 곧바로 ‘강대강 정면돌파전’을 기치로 내걸고 대한(對韓) 대화와 교류협력을 전면 중단하며, 핵·미사일 개발에 매진하는 폐쇄적 자립노선으로 돌아갔다. 이는 오늘날 ‘2개국가론’의 모태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② 체제목표·해외동포관리 규정 보완
북한은 2021년 1월 8차 당대회에서 당 규약을 개정하며, 선대(先代) 시대의 기본 노선이던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과 ‘온사회의 김일성주의화’라는 용어를 삭제(또는 풀어서 서술)하고 ‘공산주의 사회 건설’이라는 표현을 부활시켰다. 동시에 해외동포를 당 규약에 명시하고 ‘해외동포권익옹호법’ 등을 제정해 재외동포를 북한의 국적·영향권으로 편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는 독립국가로서의 국제적 위상을 강조하고, 더 나아가 ‘2개국가론’을 견고히 하려는 사전 포석으로 해석된다.
③ 김정은–김여정의 ‘헤어질 결심’ 담화
김정은은 2022년 7월 정전협정 체결 기념일 연설에서 윤석열 정부를 향해 “아예 우리와 상대하지 않는 것이 상책일 것”이라며 ‘남쪽’과의 결별을 시사했다. 같은 해 8월, 김여정이 8·15 경축사에 대해 ‘윤석열 인간 자체가 싫다’는 독설을 퍼부으면서, 북한 최고지도부는 대남관계를 완전히 끊어낼 결심을 굳혔다.
2. 한류 원천 차단… 초강경 독재 완성 수순
④ 코로나19 발생 즉시 국경 전면 봉쇄
북한은 경제·외교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중국·러시아 국경을 가장 먼저 봉쇄(2020.1)했다. 이 과정에서 ▲탈북 급감 ▲장마당 통제 ▲비사회주의 현상 척결 등 내부 개조에 성과를 거뒀다. 코로나 위기가 내부 결속에 유리하다고 판단한 김정은의 승부사적 면모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⑤ 외부정보 유입 차단… 초강경 악법의 연쇄 제정
국경단속 강화와 병행해 북한은 반동사상문화배격법(2020년), 청년사상교양보장법(2021년), 평양문화어보존법(2023년) 등을 제정해 한류 콘텐츠 유포자를 최고 사형에까지 처할 수 있게 했다. 이는 대중문화 확산이 북한 체제에 미치는 위협을 김정은이 매우 크게 인식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실제로 김정은은 2021년 4월 “청년교양 문제는 조국과 인민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며, 한류가 젊은 층을 잠식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⑥ ‘우리민족제일주의’ 대신 ‘우리국가제일주의’
김정은은 선대가 유지해 온 ‘우리민족제일주의’ 대신 ‘우리국가제일주의’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2021년 8차 당대회에서 이를 공식 이념으로 선포하면서, ‘핵무력·자력갱생으로 자존을 지키고 번영을 이룬다’는 기조를 앞세워 민족이라는 범주보다 국가라는 틀로 돌아섰다. 이는 북한이 남한과 한민족 개념을 공유하기보다는 독립된 국가로서 체제를 공고히 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3. 김정은의 탈(脫) 선대 심리… 독자 노선 강화
⑦ 김일성고급당학교 개칭… 마르크스·레닌 재소환
노동당 간부 양성기관이던 ‘김일성고급당학교’가 2021년 ‘당중앙간부학교’로 이름을 바꾸고, 새 교사를 건립하면서 마르크스·레닌 초상화를 다시 걸었다. 동시에 2023년 5월에는 김정은의 초상화를 건물 내외부에 함께 게시했다. 이는 김일성·김정일을 넘어 자신을 ‘동등 반열’에 올려놓고, 정통공산주의 이미지를 활용해 김정은 독자 노선을 강조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⑧ 핵선제공격 법제화
김정은은 2022년 핵무력정책법을 제정해 ‘대남 핵선제 타격’을 법적으로 가능케 만들었다. 최근에는 헌법 개정을 통해 이를 헌법에까지 명기하며 퇴로를 완전히 차단했다. 핵 개발을 과거 방어적 수단이 아닌 ‘핵 우위를 통한 영토 완정(完定)’ 기제로 삼고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⑨ ‘영토완정론’ 공식화
김정은은 2017년 ‘화성-15형’ 발사 성공 직후 발표한 정부성명서에서 처음 ‘영토완정’을 언급했다. 이후 2022년 핵무력정책법 전문(前文)과 제1조에도 명시해 ‘남한을 공화국 영토로 완전히 편입한다’는 식의 표현을 공식화했다. 이른바 ‘2개국가론’과 함께 대남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⑩ 우리 정부를 ‘대한민국’으로 호칭
2023년 7월 10일 김여정이 처음 담화문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정식 국호로 호칭하며 극렬하게 비난했고, 이후 김정은 역시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 과거 남측 정부나 괴뢰정권처럼 폄하 용어를 사용하던 것과 달리, ‘대한민국’이라는 공식 명칭으로 호명한 점은 의도적 거리 두기이자 완전한 ‘타국’ 규정 선언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2개국가론’을 읽는 세 가지 시각
- 선대와의 단절·독립국가 완성
- 김정은은 이미 오래전부터 선대(先代)와 선을 긋는 행보를 이어왔다. ‘김정은 우상화’와 ‘정통공산주의’의 결합을 통해 자신만의 통치 이미지를 굳히고, 민족보다 국가를 강조함으로써 남측과의 교류 가능성을 차단하려 한다.
- 한류와 외부정보 유입에 대한 극심한 공포
-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되는 외부문화, 특히 한류가 북한 내부를 잠식하는 것에 대한 위기감이 2개국가론이라는 극단적 대응으로 이어졌다. 거기에 더해 초강경 악법을 동원해 주민 통제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 김정은의 콤플렉스와 승부사 기질
- 부친·조부 시대와 차별화된 자신의 독자 노선 구축, 하노이 노딜 이후 생긴 내부 위기감, 그리고 신냉전 구도 하에 러시아·중국의 지원을 기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 등이 결합된 결과로 보인다.
- 김정은은 난관을 맞을 때마다 오히려 이를 체제 개편과 권력 강화를 위한 기회로 삼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