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견해 달라도 전임자에 대한 예우는 별개…다카이치와 이시바의 관계에서 보는 정치의 품격
한국 정치의 진영 갈등과 대비되는 장면…권력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에 대한 존중
현직 총리가 전직 총리에게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하는 장면은 정치에서 예우와 존중이 갖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일본의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가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총리에게 깊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눈길을 끈다.
사진 속 다카이치 총리는 앉아 있는 이시바 전 총리를 향해 허리를 거의 직각으로 숙이고 있다. 주변에서는 정장을 입은 참석자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 다만 사진의 실제 촬영 일시와 장소는 별도로 확인되지 않았다.
두 정치인은 같은 자민당 소속이지만 역사인식과 외교·안보 정책 등에서 서로 다른 견해를 보여왔다.
이시바 전 총리는 일본의 과거 침략전쟁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강조해 온 정치인이다.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감정적인 대립이나 강경 발언만으로는 국가안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다카이치 총리는 보수적인 역사관과 적극적인 방위력 강화를 강조하는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정치철학과 정책 방향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두 사람이지만, 사진에서 드러나는 모습은 정치적 대립과 개인에 대한 예우가 반드시 같은 문제는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물론 일본의 인사 문화에는 상대의 지위와 경력에 대한 존중을 표현하는 관습이 깊이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깊은 인사 하나만으로 일본 정치가 한국 정치보다 성숙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현직 권력자가 전임자에게 예의를 갖추는 장면은 한국 정치 현실과 비교해 볼 만하다.
한국에서는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전임 정부의 정책과 인사를 둘러싼 갈등이 반복돼 왔다. 전직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의 관계가 정치적 대립의 상징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방의 공적이나 경험까지 부정하는 문화는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임자의 정책을 비판하는 것과 전임자에 대한 인간적인 예우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정책적 책임은 엄격하게 따지되, 국가 운영을 경험한 정치 지도자의 경륜까지 부정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일본 정치에도 계파 갈등과 권력투쟁이 존재한다. 전직 총리와 현직 총리 사이의 정치적 긴장 역시 낯선 일이 아니다. 다만 공식적인 자리에서 상대에 대한 예의를 표현하는 관습은 정치적 갈등과 별개로 유지되는 측면이 있다.
정치의 품격은 상대방과 얼마나 가까운 관계인가보다 의견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에서 드러난다.
현직 총리가 전직 총리에게 고개를 숙인다고 해서 정치적 소신까지 굽히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전직 총리가 현직 총리의 정책을 비판한다고 해서 반드시 개인적인 적대관계가 되는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경쟁하면서도 국가의 미래를 위해 공존하는 제도다.
권력은 바뀌지만 국가는 계속된다. 오늘의 현직 총리도 언젠가는 전직 총리가 된다. 정치적 승패를 넘어 서로의 경험과 역할을 존중하는 문화가 필요한 이유다.
다카이치 총리와 이시바 전 총리의 인사 장면을 보며 한국 정치에도 던지고 싶은 질문이 있다.
정치적 반대자를 존중하는 것이 과연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포기하는 일인가.
상대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은 굴복이 아니라 예의일 수 있다. 정치적 소신을 지키면서도 상대방의 인격과 경륜을 존중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성숙한 정치문화의 한 모습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