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사도’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청빈과 개혁의 여정 마무리

2013년부터 가톨릭교회 수장으로 12년간 전 세계 14억 신자를 이끈 프란치스코 교황이 21일(현지시간) 88세를 일기로 바티칸에서 선종했다. 교황청 궁무처장 케빈 페렐 추기경은 이날 오전 7시 35분 교황이 영면에 들었다고 공식 발표하며 “그의 삶은 신앙과 용기, 그리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채워져 있었다”고 회고했다.

직접적 사인은 뇌졸중이었다. 지난 2월 폐렴으로 로마 제멜리 병원에 입원했던 교황은 38일간의 치료 후 퇴원했으나, 이후 건강이 다시 악화됐다. 뇌졸중으로 혼수상태에 빠진 그는 회복되지 못한 채 선종했다. 산타 마르타 숙소 예배당에 시신이 안치됐으며, 이르면 23일부터 일반 조문이 시작될 예정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례 절차 간소화를 생전에 지시한 바 있어, 장례 역시 검소하게 진행된다. 로마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 지하 무덤에 안장되며, 무덤에는 화려한 장식 없이 라틴어 이름만 새겨질 예정이다.

마지막 메시지에서도 평화와 휴전을 호소했다. 부활절 미사에서 그는 “가자지구 상황은 개탄스럽다”며 “전쟁 당사자들은 휴전하고 인질을 석방하라”고 강조했다. 평화를 향한 외침은 교황 생애의 핵심 주제였다.

1936년 아르헨티나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청년 시절 공장에서 일하며 학업을 병행했고, 빈민촌 사목에 헌신했다. 2013년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되면서 가톨릭 역사상 첫 남미 출신이자 예수회 출신 교황이라는 이정표를 세웠다.

청빈과 개혁의 상징으로 즉위 초부터 주목받았다. 순금 십자가 대신 철제 십자가를 착용하고, 방탄차 대신 소형차를 타며, 교황 전용 관저 대신 공동숙소에서 생활했다. 전례와 인사, 교회 구조 개혁에 나서며 교황청 권위주의를 탈피하고자 했고, 추기경 임명에서도 비주류 지역과 소외된 교구를 우대했다.

한국과의 인연도 깊었다. 2014년 아시아 첫 방문지로 한국을 선택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발신했다. 방북 의사도 여러 차례 밝혔으나 끝내 성사되지 못했다.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 참석도 기대됐지만, 교황의 선종으로 차기 교황의 몫이 됐다.

진보적 행보도 주목받았다. 그는 동성 커플 축복을 허용하고, 여성의 교회 역할 확대를 주장했으며,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했다. 미얀마 로힝야족,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등 세계 각지에 평화와 인권 메시지를 전한 지도자였다.

교황직 사임 가능성에 대해선 일관되게 부정했다. 지난 1월 자서전 ‘희망’에서 “사임을 고려한 적 없다. 나는 건강하다. 그저 늙었을 뿐”이라 밝히며 끝까지 자리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청빈한 삶과 실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대, 끊임없는 개혁 시도로 현대 가톨릭교회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된다. 그의 유언처럼 “무덤에 장식을 하지 말라”는 말은 살아 있는 동안의 삶을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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