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1926년 6월 잡지 ‘개벽’ 제70호에 발표된 일제강점기 대표 저항시다. 이 작품은 식민지 현실에 대한 저항 의식을 담은 자유시로 평가된다.
시가 발표된 1926년 봄 조선 사회는 순종 서거와 국장, 6·10만세운동의 기운으로 크게 술렁이고 있었다. 순종은 1926년 4월 25일 창덕궁에서 서거했고, 인산일은 6월 10일로 정해졌다. 이날을 계기로 학생과 사회운동 세력은 독립만세운동을 준비했다.
‘개벽’ 6월호는 발행 직후 일제 경찰의 압수 대상이 됐다. 이상화의 시는 이 때문에 당대 독자들에게 널리 유통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작품은 해방 이후 1951년 백기만이 이상화와 이장희의 작품을 묶어 펴낸 ‘상화와 고월’을 통해 다시 알려졌고, 이후 교과서에 실리며 한국 근대문학의 대표작으로 자리 잡았다.
주목되는 대목은 이 시가 쓰인 시점이다. 순종 서거 직후 서울과 지방에서는 봉도식과 추모 행렬이 이어졌고, 조선 사회의 슬픔은 식민지 현실에 대한 분노와 맞물렸다. 당시 서울 가회동에 머물며 작품활동을 하던 이상화가 창덕궁 돈화문 앞에 모인 군중의 통곡과 국상 분위기를 목격했을 가능성은 크다.
같은 시기 그의 주변에는 6·10만세운동을 준비하던 인물들도 있었다. 안동 출신 권오설은 순종 인산일을 계기로 한 만세운동 준비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상화와 비슷한 시기 중앙학교에 다녔고, 두 사람이 가까운 관계였음을 보여주는 엽서 자료도 전해진다.
따라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단순한 서정시가 아니라 1926년 봄의 역사적 긴장 속에서 읽어야 할 작품이다. 순종 서거 뒤 전국을 덮은 애도, 일제의 경계 강화, 6·10만세운동 준비, 그리고 식민지 조선 청년들의 분노가 이 시의 배경에 놓여 있었다.
이상화는 훗날 카프 활동, 항일시 발표, 독립운동 관련 구금 경력 등으로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그의 형 이상정 역시 중국에서 항일운동을 벌인 독립운동가로, 1977년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