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완화 24년의 일본 실험…구조개혁 없는 통화정책은 한계

양적완화 24년의 일본 실험…구조개혁 없는 통화정책은 한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한국형 양적완화(QE)의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24년 전 세계 최초로 양적완화 정책을 도입한 일본의 사례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경험이 통화정책만으로는 성장 회복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고 분석한다.

일본은행(BOJ)은 2001년 3월, 제로금리 상황에서도 지속되는 경기 침체를 타개하기 위해 양적완화에 착수했다. 민간 금융기관으로부터 국채를 대규모로 매입해 유동성을 공급함으로써 경기부양을 꾀했지만,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01~2007년 연평균 1.3%에 그치며 뚜렷한 반등을 이루지 못했다.

기업들은 자금 여유에도 불구하고 투자와 고용에 소극적이었으며, 소비와 내수 회복도 지지부진했다. 이후 2013년에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아베노믹스를 통해 양적·질적완화(QQE)로 정책을 확대한 바 있으나, 일본의 잠재성장률은 2020년대 초반까지 1% 안팎에 머물렀다.

이 기간 BOJ는 국채뿐 아니라 회사채, 상장지수펀드(ETF) 등 비전통 자산까지 대규모 매입했으나, 실물경제로 자금이 흐르지 않는 ‘유동성 함정’에 빠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양적완화는 금융시장 안정에는 기여하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기반 마련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일본의 양적완화는 자산시장에는 일시적 효과를 줬지만, 노동·산업 구조 개혁 없이 경제 체질을 바꾸는 데 실패한 대표 사례”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경제구조 개혁과 병행된 정책 운용이 필수라고 입을 모은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처럼 물가가 높은 상황에서 무분별한 유동성 확대는 소비 증진보다는 자산시장 과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양적완화는 위기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과 일본의 거시경제 여건이 다르다는 점도 언급된다. 장기 디플레이션에 시달렸던 일본과 달리, 현재 한국은 월간 물가상승률이 2%대를 유지하고 있어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양적완화의 역사적 실험대였던 일본의 경험은, 단순한 유동성 공급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냉정한 교훈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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