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에서 통일운동까지…박열·원심창·이영근 그리고 일본 통일일보의 역사적 역할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재일동포 사회의 역사는 독립운동과 통일운동, 언론 활동이 서로 맞물려 전개된 과정이었다. 그 중심에는 박열, 원심창, 이영근 그리고 재일동포 언론인 통일일보이 있었다.

박열은 1920년대 일본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항일 아나키스트였다. 그는 일본 제국주의 체제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항일운동을 벌였고, 일본 왕세자 폭살 음모 사건으로 체포돼 장기간 옥고를 치렀다. 일본 사회 내부에서 조선인 차별과 식민지 지배의 폭력을 폭로한 상징적 인물로 평가된다. 특히 일본인 동지 가네코 후미코와 함께 벌인 저항 활동은 한·일 양국 사회에 큰 충격을 남겼다.

원심창은 박열 계열의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며 중국과 일본을 무대로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그는 1933년 상하이 육삼정 의거에 참여해 일본 공사 아리요시 아키라 암살을 시도했고, 이후 체포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해방 후에는 재일동포 사회 조직화에 나서 박열 등과 함께 재일본조선거류민단, 현재의 재일대한민국민단 창립에 관여했다.

원심창의 활동은 독립운동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해방 이후에도 “완전한 독립은 민족 통일로 완성된다”는 인식 아래 통일운동과 재일동포 권익운동에 뛰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재일동포 사회를 연결할 언론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결국 통일일보 창간으로 이어졌다.

이영근 역시 독립운동과 통일운동을 함께 추진한 인물이었다. 그는 일제강점기 국내외를 오가며 독립운동을 벌였고, 광복 이후에는 여운형·조봉암 계열 정치세력과 연계해 좌우합작과 민족통일 노선을 추구했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간 뒤 조선통일문제연구소 설립, 조선민족통일회의 창설, 통일 관련 출판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이영근은 원심창과 함께 통일일보 창간에 참여하며 재일동포 사회의 정치·사회적 목소리를 담아내는 데 주력했다. 통일일보는 단순한 언론기관을 넘어 재일동포 사회의 정체성과 민족 의식을 유지하는 매개 역할을 했다. 냉전과 남북 분단이 심화되던 시기에도 한반도 평화통일과 동포사회의 권익 보호를 주요 가치로 내세웠다.

1959년 창간된 통일일보는 재일동포 사회 내부의 여론 형성과 역사 기록 기능도 수행했다. 독립운동가들의 행적, 재일동포 차별 문제, 한반도 정세 등을 지속적으로 보도하며 일본 내 한민족 공동체의 역사적 기억을 보존하는 역할을 맡았다.

결국 박열이 일제 심장부에서 저항의 상징이었다면, 원심창과 이영근은 해방 이후 재일동포 사회 속에서 민족 정체성과 통일운동을 이어간 인물이었다. 그리고 통일일보는 이들의 정신을 기록하고 확산시킨 역사적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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