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도시에서 삶의 터전으로…시애틀 한인 이민 60년

미국 북서부의 관문 시애틀은 한인 이민자들이 생업과 공동체를 함께 일군 대표적인 정착지다. 초기에는 유학생과 군인 가족, 전문직 종사자들이 중심이었지만 1965년 미국 이민법 개정 이후 이민자가 급증하면서 오늘날의 한인사회가 형성됐다.

시애틀 한인 이민사는 미국 본토의 다른 지역보다 비교적 늦게 본격화됐다.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미국 군인과 결혼한 한국 여성과 유학생, 의료인 등이 워싱턴주에 정착하면서 초기 공동체가 만들어졌다.

1962년에는 시애틀 최초의 한인교회가 설립됐다. 교회는 예배 공간을 넘어 새로 도착한 이민자들에게 주거와 취업 정보를 제공하고 통역과 행정 업무를 돕는 정착 거점 역할을 했다. 같은 시기 한인회도 조직되면서 교민사회가 제도적인 틀을 갖추기 시작했다.

한인 이민이 크게 늘어난 전환점은 1965년 미국 이민·국적법 개정이었다. 출신 국가별 이민 제한이 완화되고 가족 초청과 전문직 이민의 길이 열리면서 한국인의 미국 이주가 본격화됐다. 1970년 킹카운티에 거주한 한인은 769명이었지만 1980년에는 5125명으로 증가했다. 시애틀 시내 거주 한인도 1980년 2199명에 달했다.

초기 이민자들은 언어 장벽과 자격 인정 문제로 한국에서의 경력을 그대로 이어가기 어려웠다. 일부는 세탁소와 식료품점, 음식점, 미용실, 자동차 정비업 등 소규모 자영업에 뛰어들었다. 가족 구성원이 장시간 함께 일하며 사업 기반을 마련하는 방식이었다.

1980년대에는 한인 업주들이 시애틀 지역의 데리야키 음식점 운영에 대거 참여했다. 한국식 양념과 조리법을 접목한 데리야키는 시애틀을 대표하는 대중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한인 이민자들의 생계형 창업이 지역 음식문화까지 바꾼 사례다.

정착 지역도 시애틀 도심에서 킹카운티 남부와 북부 교외 지역으로 넓어졌다. 페더럴웨이와 켄트, 린우드, 에드먼즈, 쇼어라인 등에는 한인 식당과 식품점, 병원, 법률·회계사무소, 학원 등이 들어섰다. 특히 페더럴웨이와 린우드는 한인 상권과 단체 활동이 집중된 지역으로 성장했다.

한인사회는 경제적 기반과 함께 정치적 영향력도 확대했다. 마사 최는 시애틀 시의원과 워싱턴주 정부 고위직을 지내며 한인 정치 참여의 길을 열었다. 메릴린 스트리클런드는 워싱턴주에서 연방 하원의원으로 선출돼 한인사회의 정치적 위상을 높였다.

미국 인구조사국 자료에 따르면 워싱턴주는 2020년 기준 한국계 인구 비중이 미국 내 상위권에 속한다. 시애틀 한인사회는 이제 이민 1세대의 자영업 중심 구조에서 정보기술과 의료, 법률, 교육, 문화예술 등 전문 분야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한 세계적인 기업이 자리 잡은 지역 특성에 따라 한국에서 직접 채용된 기술 인력과 주재원, 유학생의 유입도 이어지고 있다. 한인사회의 중심축 역시 생존과 정착에서 전문직 네트워크와 차세대 교육, 정치 참여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시애틀 한인 이민의 역사는 낯선 항구도시에서 시작해 교회와 한인회, 가족 사업을 중심으로 삶의 기반을 넓혀온 과정이다. 초기 이민자들이 닦은 길 위에서 한인 2·3세대는 미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장하고 있다. 동시에 한글학교와 문화행사 등을 통해 한국계 정체성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과제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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