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의 종전 협정이 대체로 협상됐다. 곧 발표될 것이며, 호르무즈 해협도 다시 열릴 것이다.”

전쟁 발발 85일 만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이 한 줄은 세계 시장을 다시 흔들었다. 미국 국무부는 “수일 내 공식 발표가 있을 것”이라며 협상 분위기를 띄웠고, 이란 역시 “합의에 매우 근접했다”고 화답했다. 중생의 화해를 중시한 부처님 오신날의 기쁜 소식이 분명하다.

파국으로 치닫던 중동 정세가 일단 출구를 찾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 협상 테이블 위에는 미국과 이란만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뒤에는 중국이라는 또 다른 그림자가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미-이란 충돌의 전장인 동시에, 미중 전략경쟁이 에너지와 해상교통로를 통해 충돌하는 또 하나의 전장이다. 이 구도를 놓치면 지금의 중동 위기는 절반밖에 읽을 수 없다.

이번 위기에서 가장 당혹스러웠던 국가는 역설적으로 중국이었다. 이란의 최대 원유 고객은 중국이다. 동시에 중국의 해상 원유 수입 상당 부분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이 좁은 해협이 막히는 순간, 중동 산유국만이 아니라 중국 경제의 심장부도 압박을 받는다. 중국이 즉각 전략비축유 방출, 러시아산 원유 도입 확대, 외교적 긴장 완화 촉구에 나선 배경도 여기에 있다.

여기서 중요한 역설이 생긴다. 중국은 호르무즈 봉쇄의 최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이란 체제를 버티게 해온 최대 후원자다. 중국은 제재 속에서도 이란산 원유를 사들였고, 이란은 그 거래를 통해 생존 자금을 확보했다. 중국은 이란을 필요로 하지만, 이란의 과도한 모험주의는 중국의 에너지 안보를 위협한다. 이 모순이야말로 이번 위기에서 베이징이 처한 딜레마다.

지난 미·중 정상회담 이후 양국 발표문의 차이는 이 점을 잘 보여준다. 미국은 두 정상이 호르무즈 해협 개방과 군사화 반대에 공감했다고 강조했다. 반면 중국은 “중동 정세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는 수준의 원론적 표현만 내놓았다. 미국은 중국이 이란을 압박했다는 그림을 만들고 싶어 했고, 중국은 이란의 후견인이라는 명분을 잃지 않으면서도 해협 정상화라는 실리를 챙기려 했다. 이것은 외교적 혼선이 아니라 계산된 모호성이다.

이란 역시 호르무즈 봉쇄를 통해 강력한 레버리지를 확인했다. “막으니 막히더라”는 경험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앞으로 이란은 호르무즈 연안 방어 능력을 강화하고, 통항 분리대와 해상 통제권을 더 정교하게 관리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 레버리지는 양날의 검이다. 호르무즈는 이란이 상대를 압박하는 목줄이지만 동시에 자기 경제의 숨통이기도 하다. 봉쇄가 길어질수록 이란 자신도 피를 흘린다. 이란이 해협을 완전히 닫기보다 ‘통제된 재개’라는 절충안을 고민하는 이유다.

미국의 계산도 분명하다. 미국은 군사력으로 이란을 압박하면서 동시에 중국의 약점을 겨냥했다. 얼마전에 보도된 이란산 원유를 우회 수입하는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는 단순한 대이란 압박이 아니다. 그것은 이란의 생존 통로이자 중국의 에너지 우회로를 동시에 겨냥한 조치다. 결국 호르무즈는 미국이 이란을 압박하는 공간이면서, 중국의 에너지 취약성을 노출시키는 전략적 지점이 되었다.

걸프 국가들의 움직임도 이 틀 안에서 읽어야 한다. 사우디와 UAE가 미국 일변도에서 벗어나 중국, 파키스탄, 인도, 이스라엘, 프랑스, 한국 등과 협력망을 넓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곧바로 ‘탈미국화’로 해석하는 것은 성급하다. 걸프 왕정국가들의 전략은 미국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미국 의존의 위험을 낮추는 헤징(hedging)에 해당한다. 안보에서는 여전히 미국을 필요로 하고, 경제와 에너지에서는 중국을 외면할 수 없다. 그들은 한쪽 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강대국 경쟁의 틈에서 생존 공간을 넓히고 있다.

문제는 한국이다. 한국은 그동안 중동을 원유 수입처, 건설시장, 방산·원전 수출 대상 정도로 읽어왔다. 그러나 이제 중동은 단순한 경제협력의 공간이 아니다. 에너지 안보, 해상교통로, 핵 비확산, 방산협력, 미·중 전략경쟁이 겹쳐지는 복합 지정학의 현장이다. 바라카 원전, 아크부대, AI 협력, 방산 수출, 해상 물류망은 모두 이 거대한 판 위에 놓여 있다.

따라서 한국 외교는 더 이상 “돈을 벌 수 있는 중동”이라는 전통적 독법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UAE와 사우디, 카타르와 쿠웨이트, 이란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각각 따로 보는 방식으로는 부족하다. 걸프 내부의 경쟁, 미국의 군사질서, 중국의 에너지 전략, 인도의 해양 진출, 튀르키예와 파키스탄의 안보 네트워크를 하나의 구조 속에서 읽어야 한다.

한국이 던져야 할 질문은 단순히 “누구 편에 설 것인가”가 아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미·중 경쟁과 중동 재편이 겹치는 시대에 한국은 어떻게 에너지 회복력, 외교적 자율성, 산업적 기회를 동시에 확보할 것인가?

호르무즈 해협은 다시 열릴 수 있다. 그러나 그 해협 위를 흐르는 지정학의 물살은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란은 봉쇄의 효과를 기억할 것이고, 중국은 자신의 에너지 아킬레스건을 다시 확인했으며, 미국은 그 약점을 압박 카드로 활용할 것이다. 걸프 국가들은 더 정교한 줄타기를 시작할 것이다.

한국에게 필요한 것은 위기의 드라마에 휩쓸리는 감각이 아니라, 그 아래 깔린 구도를 읽는 능력이다. 호르무즈는 중동의 해협이지만, 그곳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이미 세계질서의 싸움이다. 그리고 휴전이 성사된다 하더라도 그 싸움의 파고는 머지않아 한국의 에너지 안보와 외교 전략, 산업 경쟁력의 문 앞까지 밀려올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이미 밀려왔다고 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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