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의존 넘어 독자 생태계 구축해야…한국 빅테크 ‘상상력 경쟁’ 돌입



인공지능(AI) 시대를 주도하는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한국 산업계가 새로운 선택의 기로에 서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공급망에서 한국 기업들이 막대한 수혜를 누리고 있지만, 동시에 글로벌 인공지능 플랫폼 주도권을 미국 거대 기술기업에 의존하는 구조적 한계도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아시아 행보는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엔비디아는 대만의 제조 생태계를 기반으로 인공지능 반도체 생산 체계를 구축한 데 이어 한국 기업들과의 협력을 확대하며 차세대 인공지능 산업 주도권 확보에 나서고 있다.

업계에서는 엔비디아의 전략이 단순한 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넘어 인공지능 비서와 로봇 중심의 ‘실물 인공지능’ 생태계 선점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상 공간의 생성형 인공지능을 넘어 실제 산업 현장에서 움직이는 로봇과 자율 시스템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제조 데이터와 플랫폼, 하드웨어가 통합된 생태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 기업들이 이러한 생태계에서 어떤 역할을 맡게 될 것인가에 있다. 현재 국내 반도체 업계는 엔비디아의 인공지능 칩에 필수적인 고대역폭메모리 공급을 통해 높은 수익을 거두고 있다. 그러나 플랫폼과 운영체제, 개발 환경을 엔비디아가 장악한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이 장기적으로 단순 공급업체에 머무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실물 인공지능 시대에는 데이터 주권 문제가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로봇과 인공지능이 생산 현장에 투입될 경우 기업들이 수십 년 동안 축적해온 제조 공정 데이터와 운영 노하우가 인공지능 학습의 핵심 자산이 된다. 만약 이러한 시스템이 해외 플랫폼에 종속될 경우 기업의 핵심 경쟁력이 외부 생태계에 흡수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독자적인 인공지능 플랫폼과 데이터 보안 체계를 구축하는 ‘주권형 인공지능’ 전략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네이버가 자체 검색엔진과 클라우드 기반시설을 바탕으로 인공지능 생태계를 확대하고 있으며, 스마트 빌딩과 로봇 기술을 결합한 다양한 실증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제조업 분야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로봇 기업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계열사로 두고 미래 이동수단과 로봇 기술 융합에 집중하고 있으며, 삼성전자 역시 로봇과 인공지능 분야 투자를 확대하며 자체 생태계 구축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들이 과거의 추격자 전략에서 벗어나 플랫폼 주도권 확보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단순히 글로벌 거대 기술기업이 만든 생태계에 참여하는 수준을 넘어 제조·로봇·인공지능을 통합한 독자적인 산업 플랫폼을 구축해야 미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와의 협력은 한국 기업들에 분명한 기회지만 그것이 최종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로봇, 플랫폼 산업을 모두 보유한 한국은 세계적으로 드문 산업 구조를 갖고 있는 만큼 이를 바탕으로 독자 생태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공지능 패권 경쟁이 반도체를 넘어 플랫폼과 데이터, 로봇 산업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한국 기업들의 선택이 향후 국가 산업 경쟁력의 향방을 좌우할 것으로 전망된다.

댓글 남기기

요코하마 한국기업인연합회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