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清酒) 발상지, 나라 정력사(正暦寺)…천년 고찰이 품은 일본 사케의 뿌리

나라시(奈良市) 동남쪽 산자락에 자리한 정력사(正暦寺)는 일본 불교사뿐 아니라 일본 청주(清酒)의 역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사찰이다. 오늘날 일본에서는 이곳을 ‘청주 발상지(清酒発祥の地)’로 부르며, 현대 사케 양조기술의 원형이 탄생한 장소로 평가하고 있다.

정력사는 992년 헤이안 시대에 이치조 천황의 칙명으로 승려 겐슌(兼俊)에 의해 창건됐다. 당시에는 수십 개의 당우를 갖춘 대사찰이었지만 전국시대를 거치며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됐고, 현재는 본당과 종루, 후쿠주인 객전 등 일부 건물만 남아 옛 위용을 전하고 있다.

정력사가 특히 유명한 이유는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청주 제조기술인 ‘보다이모토(菩提酛·菩提もと)’가 이곳에서 개발됐기 때문이다. 당시 일반적으로 마시던 탁주 형태의 술과 달리 젖산균을 활용해 발효를 안정시키고, 여러 차례에 걸쳐 술을 빚는 ‘모로하쿠즈쿠리(諸白づくり)’ 양조법을 확립했다. 이 기술은 현대 일본 청주의 기초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무로마치 시대의 양조 기록인 ‘고슈노닛키(御酒之日記)’와 ‘다몬인닛키(多聞院日記)’에는 정력사의 양조법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으며, 당시 쇼군 아시카가 요시히사도 정력사의 술을 “최고의 술”이라고 극찬한 기록이 남아 있다.

사찰이 술을 빚게 된 배경에는 재정 문제가 있었다. 국가의 지원이 줄어들자 정력사는 귀족과 무사들에게 고급 청주를 판매해 운영 재원을 마련했고, 그 과정에서 뛰어난 양조기술이 발전하게 됐다.

정력사의 청주 제조는 약 200년 동안 이어졌으나 이후 중단됐다. 그러나 1990년대 나라현과 연구기관, 지역 양조장들이 협력해 옛 제조법을 복원했고, 현재는 ‘보다이모토 청주’가 다시 생산되고 있다. 오늘날 나라현의 여러 양조장이 이 전통 방식을 계승하고 있으며, 매년 1월에는 정력사에서 ‘보다이모토 청주 축제’가 열려 술밑 제조 과정을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정력사는 사케의 역사뿐 아니라 단풍 명소로도 유명하다. 가을이면 ‘니시키노사토(錦の里)’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경내 전체가 붉은 단풍으로 물들어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깊은 산속 고찰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일본 청주의 발상지라는 역사성이 어우러져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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